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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법정과 스트릭랜드 사이

who_ate_allthatpizzzzza?

 

그래, 나야.

많이 먹은 탓에 배가 불렀다.

불룩 튀어나온 배를 두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며 새벽 내내 룸메한테 징징거릴게 뻔했다.

자기 감정은 딱 한번만 말해야해.

그 이상 말하는 건 서로에게 스트레스니까.

 

우리는 모두 한번씩 빡치는 일을 겪는 거 같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무언가든, 부당한 일이든, 어떤 상황에서 오는 압박감이든,

그래서 심란해진 마음을 어떻게 달랠까 생각하다가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는 것이다.

아니, 아마 낌새를 눈치 챈 상대가 먼저 물어볼 것이다.

"무슨 일 있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엄청나게 대단한 사건이라고 여긴다.

친한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가 당장 내게 주목할만한 일이고

이 사건을 들은 사람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와서 자신을 위로해주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나는 그가 원하는 수준의 반응과 관심을 주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모습을 본적도 더러 있다.

 

누구에게나 세상살이는 쉽지 않다.

내 감정에 얽매여 대단히 화날만한 일이었다고 씩씩대던 오후의 내 모습은

저녁 술자리에 와서 이야기를 하면 그저 그런 놀림감 정도로 변해있는 것을 보았다.

나이가 찰수록 대수롭지 않은 일로 유난을 떠는 것은 자제력을 잃은 것과 같아보이는 것 같다.

대수로움의 기준이 점점 더 높아져서, 고통스럽게 하는 감정들에 더욱 무뎌지고 싶다.

 

무슨 일이든 이미 벌어진 일은 엎질러진 물과 같다.

아무리 화가 나고, 흥분되고, 불안하고, 쪽팔린 감정이 휘몰아쳐도 이미 일은 벌어졌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다른 사람은 관심도 없으니 그리 심각해하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한텐 그렇게 신경쓰였던 사건이 남의 눈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고

나 혼자만 끙끙 앓았구나 깨닫는 순간이 온다.

 

살아가면서 하게 될 수많은 선택들 중 정답 따위는 없다는 걸 안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치만 어차피 정답이 없는 세상이라고 모든걸 "운명"과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고 방관하는 삶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삶을 갉아먹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몰라도, 적어도 걸어온 발자국을 살펴보면 그랬다.

 

 

선택에 정답은 없었지만 어떤 선택을 하건 살아남을 구멍은 늘 있었다.

선택이 실패한 줄 알았는데 더 큰 기회가 되어 찾아올때도 있었고,

성공한 줄 알았던 선택은 나를 위기에 빠뜨릴 때도 있었다.

그렇다면 중요한건 내가 했던 선택 그 자체보다,

내가 그 선택 위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얼마나 떳떳하게 임했는가.

승패보다는 과정에 미련을 갖는 사람이 되기를.

과정 위에서 누구보다도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부디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을 하다가 슬슬 스트레스를 받는거 같으면 충분히 고민한 것이다. 

이제는 선택해라.

이제는 어떤 선택이든 손쉽게 살아남을 구멍을 만들 수 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라야 말로 정답이라면 정답이겠다.

 

'왕도'의 길은 없지만 '정도'의 길은 있다는 것도 안지는 오래되었다.

그리고 내가 찾은 '정도'의 길은 지겹겠지만 독서이다.

글을 읽을 줄 안다면 닥치는 대로 읽자.

정답에 가까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의 많은 부분이 독서에서 기인할 것이다.

독서로 정도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주관이 없는 사람은 말투에서부터 그 부재가 느껴진다.

"~인것 같아요."

나는 내 생각을 세게 전하고 싶지 않아서, 겸손해보이고 싶어서 자주 애용했는데,

말투는 나의 세계를 조금씩 조금씩 바꿔오기 충분했던 모양이다.

나는 어느새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인 것 같다"로 끝날 말일것 같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을거야.

아니면 오히려 앞에서 치고 나와서 뒤에서 확실히 맺어라.

"내 생각은~ 이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