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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법정과 스트릭랜드 사이

9/17 make_no_sense_xxxxxx

 

끊어야한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핑계거리를 이것저것 댈 수 있었다.

여자친구 생기면 끊어야지, 이번 시험만 끝나면 끊어야지, 한갑만 털고 끊어야지 ...

몇일을, 아니 몇달동안 안 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날때면 망설임없이 피웠다.

언제라도 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핑계거리보다 더 좋은 핑계거리를 찾았다.

지독히도 오랜만에 느끼는 자신감이었다.

 

훈련소때 나이가 꽤 많던 분대장 형이 한분 있었다.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겨 이것저것 묻다가 나와 같은 대학인 것을 알게 되고 왠지 모를 유대감이 생긴채로 지냈다.

당시 나는 사이즈가 맞지 않은 군화 덕에 물집이 잡혀서 형님과 함께 의무실에 들렀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형은 의무실에 볼 일이 생기면 괜히 나를 불러 데리고 갔다.

처음에 왜지 했는데 그덕에 사역에서 중간에 빠지거나 남들보다 일찍 복귀할때가 생겼다.

군의관이 퇴근한 적막한 의무실에서 형님과 시덥잖은 인생이야기를 풀다가 복귀한 일도 있었다.  

그 작은 호의가 고통스럽던 훈련소 생활에 한줄기 빛이었던것을 형님은 알까.

내가 따르고 존경했던 형님은 잘 지내고 있을까.

그때 그 형 나이를 듣고 나와는 관계없는 나잇살인줄 알았는데

지금 달력을 보니 내가 그때 그 형님 나이쯤 됐지 않았나 싶다.

 

형은 담배를 한번도 입에 대지 않고 피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적이 없는데,

군대에 와서 담배 피는 사람에게 딱 한가지 부러운 것이 생겼다고 했다.

확실한 자기만의 시간이 생기는 것.

군생활에 치이다가 그래도 한번씩 자기와 마주할 시간이 생긴다는 점이 부럽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흡연이 궁금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볼따구에 여드름이 한개씩 나있었다.

만병통치약이라던 로아큐탄도 소용이 없었다.

믿음을 갖고 신경 끄기의 기술을 적용하면 좀 나아지려나.

부디 이 잡것들과 결별하는 날이 오기를.

 

신문을 읽고 노트북 대가리를 들어올려 작업을 시작했다.

주 5일 30시간 일하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이게 맞다.

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으면 주52시간이나 비슷비슷할것이다.

 

시간은 살 수 없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옳다.

하지만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은 오히려 효율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소일거리에 치이다 보니 내 하루, 내 일주일, 내 인생에 쌩얼로 마주할 기회를 잊고 지냈다.

일이 끝나면 의미로운 시간들을 보냈줄 알았건만 지나고 보니 죄다 무의미한 시간들이었다.

힐링타임은 잠깐이었고 그 뒤로는, 관짝의 시체분과 같은 종류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 오래지 않아 별 생각 없이 한 것들은 곧 별 의미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패시브같은 것이라 나를 통째로 바꾸지 않으면 바꾸기가 힘들었다.

 

2020년 새해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창 밖엔 벌써 가을바람이 서성인다.

언제가 평일이고 언제가 주말인지..

월화수목금금금이 바로 이맛인가? ?

구분할 새 없이 흘러간 세월은 계절을 앞당겨주었다.

여유를 마음껏 부릴 수 있는 날이 다시 찾아오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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