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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법정과 스트릭랜드 사이

8/4 11:23 onthehilliny_s_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단단해지고, 구체적으로 변하고, 때문에, 확실해져갔다.

 

길을 걸으면서도 유튜브를 보았다.

남이 떠드는 것을 보았다.

남이 게임하는 플레이를 보았다.

그래, 동기부여 영상이나 역사 이야기도 들으면서 공부하는 거라고 자위를 했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좋아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리젠되는 글도 읽었다.

 

채사장은 단순하게 생각해보고자 우리네 인생을 둘로 나누어보았다.

남자와 여자, 진보와 보수, 동양인과 서양인, ...

수많은 이분법적 후보들 속에 가장 적절한 후보를 골라내어 세상사를 풀어내었다.

당선된 후보는 자아와 세계였다.

 

생각은 하면 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단단해졌다.

이내 구체적으로 변하고, 때문에, 확실해져갔다.

이것은 분명 자아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제 자아는 세계에 의해 도전받고 있었다.

무분별하게 떠도는 글들과 떠들어대는 영상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건 없었다.

'구글과 애플은 어떻게 우리네 인생을 잠식시켜 가는가' 따위의 사설을 읽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잘못된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오늘 이런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조금 늦게했다면,

그게 조금 무서웠을 뿐이었다.

이놈의 정보화 시대,

관두는것 보다는 경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인들이 최전방에서 보초를 서며 나라를 지키듯,

나 또한 나의 자아를 위하여 몇몇 경비병들을 세워두곤 했다.

이따금씩 봉화에 연기가 날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되면 글을 마구잡이로 써대기 시작했다.

온종일 경계만 서서 피곤해졌을 경비병들에게,

"나 꽤 잘 버티고 있어"

이것은 마치 위로편지 같은 것이다.

 

아빠가 많이 힘들어 보일때는 아부지의 굳은 어깨를 힘껏 주물러 드릴 수 있었다.

엄마가 아플때는 입가에 미소를 가져다 줄 수 있었다.

나는 멋있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것을 깜빡 잊었다.

잊은채 하염없이 구석에 내몰면서 쪼아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도 행복할 수 있다는,

코 앞에 놓인 뻔한 사실을 잊은 채,

자꾸 손을 뻗으면서 행복이 뭔지 찾고 있었다.

아, 등잔 밑이 이리도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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