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서울에 올라와 내 자취방을 전부 치워놓았다.
내 자식들이 온통 뒤바뀌어 새로운 집에 온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엄마는 내가 책상 옆 서랍장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꽤나 읽으셨던 모양이다.
들키면 안되는 것들은 죄다 치워두었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찜찜하다 했는데 역시나.
나의 부끄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내게 꼭 물었다.
"근데 초콜릿을 안좋아한다고 써놓은 건 뭐야?"
1년 전에, 빼로로로쉐를 선물로 받았다.
24개가 들어있는 팩이었고, 받자마자 예의 상 하나 집어들어 먹었다.
이거 알지? 싸구려 초콜릿이 아니고, 꽤나 맛있다고 소문 난 초콜릿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 가끔 놀러오는 친구들이 있으면, 묻지도 않고 먹어대는 친구놈들 일쑤였고, 보내고나면 몇개씩 사라져 있던 나름 손님맞이용 효자상품이었다.
나 또한 초콜릿을 엄청 좋아하진 않지만 못먹는것도 아니고, 가끔 공부하다 당떨어질때 하나씩 먹으면 좋겠거니
해서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는데, 나는 처음 1개를 먹은 것을 제외하곤 단 한개도 그것을 먹지 못했다.
아니, 먹지 않았다고 하는게 맞겠다.
가지런히 놓인 빼로로로쉐를 보면서 생각했다.
" 아.. 나 초콜릿 별로 안좋아하는구나 "
주관이 없기로 소문이 난 내가 경종을 울릴만한 깨달음을 얻었다.
불호인 것을 찾은것이다.
이제 나는 누가 물어보면 초콜릿 별로 안좋아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것 같다.
사계절이 지나고서야 고작 초콜릿을 안좋아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내 나름대로 주관을 얻는 법을 한개 찾은 느낌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알고 싶으면, 곁에 가까이 둔다.
곁에 두었는데 안보이거나 사라진 것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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