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법정과 스트릭랜드 사이

4/17 해탈보고서

f_s_t_k 2020. 4. 17. 23:43

독서의 좋은 점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이 쓴 글에 대해 허점을 찾을때이다.

 

허점이라기 보다는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게 좀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좋은 이유는, 글을 읽다보면 생각없이 쭈욱 읽다가 책이 끝나버리는 일이 자주 있다.

 

딱히 생각할 필요가 없는, 그냥 나름의 논리대로 잘 쓰여진 책.

 

그런 책은 내 마음의 도끼질을 하지 못했다.

 

더욱이 이런 종류의 책이 제일 재미없다.

 

가끔 책을 읽다 화가 날때가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데, 자기는 뻔뻔하게 그 논리를 펼쳐나간다.

 

그럴때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글 속의 저자와 내가 만나지는 않았지만 이리 저리 싸우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고, 지식을 주는 책도 좋지만

 

이렇게 나와는 생각이 달라 비판할 거리가 있는 책도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욕망을 통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것이 바로 수행이다.

가장 좋은 수행은 글쓰기다.

사람들이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잡을 땐 부담이 없다.

노래를 못한다고 내가 부족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

글은 다르다.

글은 곧 자아다.

글을 못 쓰면 부족한 내가 드러나는 것 같다.

글쓰기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글이 나를 드러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노력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글쓰기는 최고의 수행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더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 하고,

더 좋은 글을 고민하고 쓰는 과정에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김민식, <나는 질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中

 

 

 

 

 

좋아하는 작가라 믿고 샀는데 책을 받아본 직후에는 꽤 후회했다.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나도 이런저런 생각(창업, 전문직 등등) 많이하지만 역시나 현실의 벽에 취업의 절차를 밞을 것이고..

 

취업이 아니라도 결국 인생을 살면서 '노동자' 신분이 될 가능성은 높으니까..

 

자본주의에서 '노동'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듣는 것이 나쁘지 않겠다 생각이 들어 읽어나갔다.

 

 

 

 

사실 오늘 쓰고 싶은 이야기는 책과 관련된 비판은 아니었고,

고미숙 작가님의 백수의 시대 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해서 오늘 하루종일 또 의대의 꿈을 꾸었던 것을 쓰려했으나..

그 근방을 읽다가 문득 어? 이건 좀 아닌거 같은데? 해서 글을 쓰며 한번 비판을 하려고 한다.

대충 어떤 비판을 할지는 알고 있으나 이 비판을 전개하면서 내가 어떤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그 깨달음의 과정을, 단지 머리속에서만 풀어내기 보다 글을 닥치는 대로 쓰면서 어떻게 의식이 흘러가는지 남기고 싶었다.

 

 

하고 싶은 비판은 이것이다.

김민식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이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부르는 행위를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작가가 말한 '가장 좋은 수행'이 글쓰기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글은 곧 자아라고 생각할 수 있고 , 열심히 글을 쓰고 또 고쳐나가다 보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노래 부르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는 수행이 될 수 있다, 글쓰기가 수행이 될 수 있듯이.

그래서 노래를 못하면 부족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노래도 '노력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단지 재미로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노래를 업으로 삼고, 혹은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노래를 잘 부르면서 자존감을 챙기고,

본인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느끼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김민식 작가는 글쓰기가 자아발전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살아온 인생이 그래서인지, 글쓰기라는 도구에 빠져 다른 도구를 업신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 좀 못하면 어떤가?

표현을 좀 못하면 어떤가?

어떤 감정을 겪고서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좀 어떤가?

 

 

흐느끼는 소리로, 선율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완벽히 음정을 찍어내며 감정까지 실어내면,

이 또한 자아의 성숙이다.

아니면 어떤 영감을 얻고 이를 춤으로 기획해서 몸으로 표현하는 것 또한 자아의 성숙이다.

글쓰기가 자아성숙의 좋은 수단,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기조가 될 수 있지만,

그 이외의 좋은 수단 많고 ( 음악뿐만 아니라) 그러한 수단의 무게를 저울 위에 눈금 따위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수단으로, 가치관 대로 성숙해지면 되는 것이다.

(내가 꼭 다루고 싶은 주제 중 하나가, 나는 왜 성장해야 하는가? 왜 성숙해져야 하는가? 인데, 이에 대해서 날잡고 글쓸것! ㅎㅎ)

 

 

그래서 수행의 최고봉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고,

굳이 말하자면 수행의 최초단계, 불가결의 단계는 있는데, 이는 사색이다.

글쓰기도, 노래도, 연극도, 어떠한 활동도 깊은 사색이 동반된다면 어느 도구를 써서 표현하든 좋다.

그 나름대로의 멋으로 우리는 성숙해질것이다.

이 세상사람들이 죄다 글만 쓰고 있으면 재미없다.

그리고 말했듯 글을 쓰는것만이 능사도 아니고...

 

 

 

길게 이야기 했지만,

김민식 작가에게 내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볼드체로 칠한 "사람들이 > 나는" 이 대목만 손봐준다면 내게 더 불편하지 않은 대목이 돼었을것 같다.

김민식 작가에게 글쓰기가 그런 존재라는 것은 아마 그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그러한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려는 그의 마음 또한 얼굴 못지 않게 예쁘다.

그의 책구절이 오늘 나를 이렇게 또 신나게 글을 쓰게 해주었다.

아,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됐구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