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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내겐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하여

f_s_t_k 2020. 3. 10. 13:31

 

플래너에 붙어있는 책갈피 용 실끈.
이 실끈을 유심히 보았다.
촘촘히 엮여있는 이 실끈에 대하여.
너무나 발전해버린 세상을 본다.

우리는 대부분의 것들에 대하여 뻔하게 생각하고 산다.

보잘것없는 플래너 실끈마저도,
만들어보라고 하면 이쪽 산업의 전문 종사자 정도가 아닌 이상 만들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들긴 커녕 어떻게 만드는지. 어디서 만드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물론 만들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실끈의 가격이 100원이라고 하면,
우리는 최저시급의 1/80만 지불하면 살 수 있다.

적당한 편의점에 앉아 1분정도 일을 하고 페이를 받는다고 하면,

만들수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러한 사실에 놀라곤 했다.
세상 모든 물건들.

보잘것 없다던 공산품부터 시작해서, 옷, 가구, 전자제품, 건물 등등

어떻게 만드는지 조차 모르는 다른 세계의 것을

내가 여태 배웠던 내 세계의 것으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은 꽤나 매력적으로 들린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던 것처럼,

화폐가 발달한 것은 기술적인 요구가 아니라 순수한 정신적인 혁명이었다.

화폐는 물질적 실체로 보이지만 심리적 구조물에 불과하다.

이 말이 믿기 힘들다면 당장 내게 카카오페이로 백만원을 입금하라.

나는 지폐가 내게 오지 않아도 잔고를 상상하며 웃게 될 것이다.

인간이 개발한 가장 효율적인 발명품은 '화폐'일 것이다.

신기하게 이는 '보편적인 신뢰'라는 황당한 기술이 들어간 제품일 뿐이고.

 

그 덕에 우리가 아는 것, 만들수 있는 것 그 이상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법정스님이 주창하던 무소유의 핵심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매력이 조금은 사그라들지 모르겠다.

매력이 의구심을 품게 된다고나 할까?

법정은 소유가 집착을 만들게 한다고 했고, 집착은 우리 삶을 병들게 한다고 입이 닮도록 말했다.

실제로 우리가 가질 수 있게 된 것들. 즐길 수 있게 된 것들이

주체가 바뀌어 그것들이 도로 우리를 소유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종종 있을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고어텍스의 옷이 있고, 집집마다 소나타가 있으며, 거꾸로 가는 귀뚜라미 보일러가 있고, 휘센 에어컨도 있다.

단연 궁극은 스마트폰인데, 이 안에서는 몇년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면 스마트폰이 애플이냐 삼성이냐 일뿐이다.

그 이상의 의문(엘지냐 같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좋아지면 더 좋은것을 찾고,

편해지면 더 편한것을 원한다.

여유는 곧 나태와 게으름을 낳는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 무언가를 원하게 되고,

이는 가질때보다 더욱 우리를 빈곤하게 만든다.

공허하고, 허무하게 느끼게까지 한다.

 

<천재들의 공부법> 의 지은이 조병학 교수님은 우리가 아는것은 항상 모르는 것보다 많지 않다고 했는데,

이 말은 옳고 그름을 떠나 당연하다.

우주론적 관점에서 137억년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빅뱅에서 우주가 탄생했고,

태양계 관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45억년전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

현생 인류는 여러 진화론적 관점이 있지만, 우리와 같은 종을 살필때는 역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부터 쳐주는게 국룰이며, 탄생시기를 약 20만년 전으로 보고있다.

이 유수한 역사에서, 세계는 여러 국가와, 공동체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고, 여러가지 정의와 약속이 있었으며, 놀라운 발명과 발견이 있었다.

 

어찌 이 모든것을 다 알겠는가?

한 사람이 위와 같은 역사에 진행된 모든 일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더욱이 중요한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알고 싶은것을 알고, 하고싶은 것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세상엔 알것이 너무 많다며 한탄하거나,

하고 싶은것이 너무 어렵다고 징징댈 이유가 없다.

이기적이다.

선조들이 지키고 가꿔낸 이땅에 서있고,

온갖 원리 모를 기술을 즐기고,

가장 검증된 제도 아래 살아가면서,

그런 불만을 품는것은, 이기적이다.

 

그런 이기심이 혹시나 아직도 불만이라면 절에 들어가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절이 부담스럽다면 법정스님이 생전에 계셨다던 강원도 산골 오두막을 권해본다.

무소유의 자세로 수행을 정진하다보면 둘 중 하나를 깨달을 것이다.

세계의 크기에 대해 감탄하여 한없이 겸손해진 자신을 얻거나

집착과 잡념이 들지 않은 상태로 자연과 물아일체 된 자신을 얻거나.

 

위의 추천을 원하지 않는 나는 생각한다.

세상은 너무나 발전했고, 나는 모든것을 알 필요도 알 수도 없다.

단지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아는곳만큼만 알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대로 하고 싶다.

호기심이 많은 상태로 모르는 것은 자신있게 모른다라고 말하고 배우고 또 배우고 싶다.

배우기만 해도 이 인생을 다 써버리기에 부족한 시간일 것이다.

 

2015년 12월에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 책이 출간되고 대한민국 서점을 휩쓸었다.

신생작가 채사장은 글솜씨도 글솜씨지만 대학시절 책만 죽어라 읽은 책돌이였는데,

넘치고도 넘치는 이 지식에 대해 한권의 책으로 얇게 포장함으로써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지식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하지만 본인이 제목에 필사했듯, 넓고 얕은 지식일 뿐이었다.

철학, 역사, 정치, 경제 등 많은 분야에 이분법적, 혹은 그 이상의 단순한 시각으로 핵심을 풀어냈지만,

그것으로 내가 좀 안다 싶은 것은 아니었다.

이 타이밍이 아주 절묘했고, 이러한 테마 속에 노다지를 본 많은 사람들이 교양컨텐츠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잘 아는 알쓸신잡의 성공이유도 이러한 대유행의 연장선상에서 증명된다.

 

트렌드코리아 라는 책 또한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온갖 칭찬과 비난을 받은 김난도 작가에게 오랫동안 밥줄이 되왔던 책.

 

 

좀 더 욕심이 있다면,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하기 싫은 것까지 즐겁게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노래를 잘하고 싶어 발성연습을 한다거나,

연주하고 싶은 노래가 있어 피아노연습을 한다거나,

춤을 추고 싶어 춤연습을 한다거나,

몸을 키우고 싶어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일약스타가 되고 싶다는 꿈도 꾼다.

김다미라는 배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처음으로 드라마 감독이 부러워 보였다.

부럽습니다

 

 

법정스님이 에 붙어있는 책갈피 용 실끈.

이 실끈을 유심히 보았다.

촘촘히 엮여있는 이 실끈에 대하여.

너무나 발전해버린 세상을 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위인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태리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아닌 다빈치는 화가에 가깝고 실제로 다빈치의 많은 업적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것이 그림작품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많은 분야에서 활동을 했고 꽤나 진척을 이뤘다는 역사적 사실을 볼 수 있다.

 

 

 

이 작은 실끈 덕에 많은 물음이 생겨난다.

이 실끈조차 만들지 못하는 너무 작은 나는
세상에 무

 

우리는 대부분의 것들에 대하여 뻔하게 생각하고 산다.

 

보잘것없는 플래너 실끈마저도,

만들어보라고 하면 이쪽 산업의 전문 종사자 정도가 아닌 이상 만들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들긴 커녕 어떻게 만드는지. 어디서 만드는지도 정확히 모른다.